
포털의 지식검색 사이트에서 ‘기차여행 갈만한 곳 없나요?’ 하고 물으면 정동진, 해운대와 함께 꼭 등장하게 되는 곳이 보성이다. 보성차밭과 율포해변으로 대표되는 멋진 관광지가 있으니 서울에서 떠나기엔 좀 멀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고, 겨울에도 푸른 잎을 간직한 넓은 차밭에서 친구, 연인과 아무렇게나 찍어대도 사진발 잘 받으니 데이트 하기도 좋은 여행지다. 여기에 명봉역 같은 드라마 촬영지 간이역의 낭만까지 살짝 더해준다면 금상첨화이리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성까지 5시간이 넘는 오랜 시간을 기차 타고 가서 보성의 차밭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대한다원을 방문하고, 택시나 버스를 이용하여 율포해변에 잠시 갔다가 다시 오랜 시간을 기차로 돌아오는 일정을 짜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기차를 타는 즐거움보다는 기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길어져 여행 자체가 힘들어지게 된다.
이럴 때는 잠시 한적한 간이역에 내려 바람도 쐬고 사진도 찍고 또 낯선 동네 구경도 하면서 콧바람을 좀 넣은 다음 보성으로 가도 늦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사람 넘치는 주말의 보성차밭보다 이런 간이역의 기억이 더 크게 남을지도 모른다. 물론, 여행을 ‘누구랑’ 가는가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겠지만.
여름향기 촬영지, 명봉역
기차가 거의 보성역에 도착할 무렵 지나치거나 잠시 멈춰서게 되는 역이 있다. 명봉역이다. 전라남도 보성군 노동면 명봉리에 위치한 경전선 철도역으로 1930년 12월 25일 영업을 시작한 이래로 꾸준한 이용객과 역무원이 근무하고 있었으나, 이용객 감소와 역 운영 효율화를 이유로 2008년 6월 16일 무인역으로 격하되었다.
무인역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역무원이 근무하지 않음을 뜻하는 것만이 아니다. 잘 가꿔진 정원에는 풀이 돋아나고, 역 구내를 지키던 강아지나 닭들도 함께 어디론가 옮겨지게 된다. 종이로 된 승차권도 더 이상 기차역에서 끊을 수 없게 되므로 기차 안에서 표를 사야 하고, 아기자기하던 역사 내부의 장식물이나 사진도 볼 수 없게 된다. 무엇보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역무원분들과 마을 주민들의 구수한 이야기나 기차역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게 된다는 점이 큰 차이일 것이다.
그래도 아직 명봉역은 충분히 가볼 만한 간이역이다. 우선 역이 참 이쁘다. 1950년대 초,중반에 지어진 붉은 벽돌건물과 파란 지붕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봄이면 역 앞마당에는 벚꽃을 비롯한 여러 가지 종류의 꽃이 시기를 달리 하며 교대로 꽃을 피운다. 차로 국도를 지나가다가 무슨 공원인가 싶어 들르는 사람도 있고, 역 한 켠에 서 있는 ‘드라마촬영지’라는 팻말을 보고 들르는 사람도 있다.
역 구내로 들어가면 양방향이 곡선 구조인데다 철로 옆으로 히말라야시다를 비롯한 나무들이 작은 숲을 이루고 있어 기차가 진입하는 장면이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아니, 이미 이런 곡선 덕분에 드라마나 영화의 중요한 배경장소가 되었다. 2003년 인기드리마 ‘여름향기’에서 주인공 송승헌과 손예진의 이별이 이루어진 곳으로, 역 맞이방에는 주인공 송승헌과 손예진의 사인과 명봉역이 배경으로 나오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 일종의 드라마 촬영지 ‘인증샷’으로 남아 있다.
이제는 이용객도 별로 없고, 역무원도 없고, 송승헌, 손예진도 없고 드라마 촬영도 없지만, 드라마의 추억과 간이역의 낭만만은 그대로 남아 있으니 보성 가기 전에 잠시 기차에서 내려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아쉽게도 역 주변에는 별다른 볼거리는 없으니 역을 둘러본 후에는 기차나 버스를 이용해서 광곡-보성으로 이동하는 게 좋겠다. 하루 6~7회 멈춰 서는 열차 시간을 맞추기 힘들다면 역 앞 길 건너편에서 보성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추천 하루여행 코스
용산~보성 직통열차는 하루 한 편 있고, 광주송정리~보성 가는 열차는 하루 4회 있다. 열차/버스를 이용해서 보성에 가도 좋고, 보성역에서 광곡-명봉역 가는 무궁화호를 타는 것도 좋다. 광곡역은 하루 열차가 한 번 선다. 따라서 한 번은 기차, 한 번은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이 유용하다.
명봉역은 하루 7번 열차가 정차하므로 기차를 타고 보성이나 광주 방면에서 접근이 비교적 쉬운 편이다.
글·사진 임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