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4월1일 철도원 총재 취임(농상공부대신 겸임)
자는 景召. 호는 시남. 본관은 려흥. 무년문과 병과에 급제. 수구파 문신으로 1884년 승지에 올랐다. 김옥균이 갑신정변에 실패하여 일본에 망명하자 민응식과 협의하여 장은규를 일본에 밀파하여 암살토록 하였으나 실패했다. 그 후 대 사성, 강화유수, 평안도 관찰사, 궁내부 진특관, 철도원 총재 등을 거쳐 각부 대신을 역임하고 시종원경, 제실재정위원회의의원 을 지내고 1910년 한일합병이 되자 자작이 되고 이왕직장관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