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선 콘크리트궤도 개량…400km/h 증속 위해선 필수" [기획]
[표 구하기 힘든 고속열차, 해법을 찾아라-⑦]
경부1단계 광명-동대구, 자갈궤도 부설…교체주기 도래
폭설때 '자갈비산', 폭염때 '레일좌굴'…열차서행 원인
기후위기 일상化에 잦은 지연, '고속車 운영 효율성 저하'
자갈궤도 줄여야 선로 인력 투입↓…작업자 안전 확보 유리
코레일 철도연구원, 자갈→'콘'궤도 급속개량 기술·경험 확보
"공구 나눠 동시에 하루 50m 이상 작업, 신속하게 개량 가능"
2024년 한 해 동안 고속열차를 이용한 승객은 약 1억 1천만 명. KTX는 하루 평균 23만 4천 석, SRT는 5만 3천 석을 공급하고 있지만, 좌석은 늘 부족하다. 이제 '예매 전쟁'은 일상이 됐다. 고속차량을 더 사서 운행하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고속선 인프라를 확장·개선하고, 운영 기술도 '업그레이드'하는 등 종합적인 '마스터플랜'을 수립해야 한다. <철도경제신문>은 고속열차 공급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와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다뤄 본다. / 편집자 주

경부고속철도 1단계 구간 천안아산역 인근(서울방향) 선로. 자갈궤도가 부설돼 있다. 이 구간은 열차가 하루 최대 350여 회(왕복) 운행한다. 2029년경 선로유지관리지침 상 교체 기준인 '누적통과톤수 8만톤'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5.8.19 / 철도경제
2004년 경부고속철도를 첫 개통한지 21년이 지났다. 이때 시속 300km급 고속 전용선로를 부설한 곳이 광명-동대구 구간이다.
자갈궤도로 부설한 이 구간을 대대적으로 손 봐야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광명-동대구 264km 구간 중 오송-평택 등 열차가 가장 많이 다니는 구간은 '선로유지관리지침'에 따라 2029년경에는 교체 기준인 '누적통과톤수' 8억 톤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나머지 구간도 2033년까지 점진적으로 교체 기준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새정부 국정과제에 고속열차를 시속 400km급으로 증속하는 사업이 포함되면서, 이를 받쳐줄 수 있게끔 인프라를 개량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이미 시속 400km급으로 달릴 수 있는 고속차량은 개발 중이다. 남은 건 궤도, 신호, 전차선 등 인프라다. 신호시스템의 경우 한국형 열차제어시스템(KTCS-2)으로 교체하면 이론상 시속 300km 이상에도 대응할 수 있다.
문제는 궤도인데, 전면 개량이 필요하다. 현재 부설된 자갈궤도에선 최고 시속 300km까지 달릴 수 있어, 콘크리트궤도로 개량해야만 증속을 할 수 있다.
자갈궤도, 건설비 1.7배↓ 유지보수비 3.7배↑…기후위기에도 취약

경부고속철도 1단계 천안아산역 인근 선로. 자갈궤도가 부설돼 있다. 2025.8.19 / 철도경제
궤도(선로)는 열차가 원활히 주행할 수 있도록 설정해 놓은 주행로인데 크게 레일, 침목, 도상으로 구성된다.
도상은 선로에서 노반과 침목 사이에 끼워진 일종의 충격 흡수장치다. 레일과 침목이 받는 하중을 노반에 분산시키고, 진동을 흡수해 차량 승차감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한다.
대표적으로 자갈궤도와 콘크리트궤도가 사용된다.
자갈궤도는 세계적으로 가장 오랫동안 사용한 도상 형태다. 열차가 다닐 때 소음이 적고 건설비용도 싸다. 일반선이나 오래된 철로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콘크리트궤도보다 공사하기가 수월하고 유지보수 작업도 용이해 긴급하게 선로를 복구할 때 유리하다. 하지만 콘크리트궤도에 비해 레일을 원형 그대로 유지하는 힘(내구성)이 약해 '손'이 많이 간다.
자갈궤도에선 열차가 통과하면서 가해지는 '반복하중'으로 인해, 궤도가 미세하게 변형되는 '궤도 틀림' 현상이 생긴다. 이때 궤도 구성품도 손상된다.
현재 경부고속선 광명-동대구(1단계) 구간의 연간 유지보수 비용은 약 121억 원에 이른다. 유지보수 비용도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만성적인 좌석 부족난을 겪는 경부고속선에선 운행 효율성을 확보하는게 중요하다. 그런데 자갈궤도에선 열차가 서행하는 일이 잦은 편이다.
겨울철에는 폭설과 한파로 인해 눈들이 열차 하부에 달라붙어 얼음덩어리처럼 변한다. 온도가 조금 오르면 이 얼음덩어리가 떨어져 자갈과 부딪히는데, 이때 자갈이 튀어 오르면서 KTX 유리창이 깨지거나, 인접 농가에 피해를 주기도 한다. 겨울철에 고속열차가 서행하는 이유 중 하나다.
실제로 지난 2023년 12월에는 목포에서 출발한 KTX가 운행 중 자갈이 튀면서 객실 유리창 30장이 파손되기도 했다. 자갈비산으로 인한 유리창 균열 사례는 지난해 61건, 올해 1~2월에는 94건이 발생했다.

2022년 7월 1일 대전조차장 인근에서 SRT열차가 탈선한 모습. 레일 '좌굴'이 원인이었다. 자료사진. 2022.7.1 / 철도경제
여름철에는 '좌굴(압력을 받는 기둥이 판이 한계를 넘으면 휘어지는 현상)'을 조심해야 한다. 기온이 상승하면, 레일이 늘어나 '휘어짐'이 발생하면서 탈선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고속·일반선 본선 대부분이 장대레일로 시공돼 있는데, 이음매가 없기 때문에 승차감이 우수하지만 '좌굴' 현상과 같은 선로 휘어짐을 잘 관리해야 한다.
지난 2022년 7월 경부선 대전조차장에선 레일 좌굴이 발생해, 이 곳을 지나던 SRT 열차가 탈선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러한 사고를 예방하고자 자동살수장치(물을 뿌려 레일을 식히는 장치)를 가동하거나 차열페인트 도포 등 조치를 취한다. 또 안전을 확보하고자 선제적으로 감속 운행하기도 한다.
기후위기가 일상화되면서 폭염 일수가 증가하고 있는데, 이럴수록 고속열차가 자주 서행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셈이다.
자갈궤도는 주기적으로 자갈교체, 세척, 다짐 작업 등을 해야 한다. 이 작업이 이뤄진 후에는 열차가 곧바로 제 속도로 달릴 수 없다.
권세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철도연구원 시스템연구부장은 "이러한 작업 후에는 자갈 사이의 간극이 다 메꿔지지 않는다. 특히 '횡저항력(횡압)을 잘 확보했는지'를 중요하다"며 "횡저항력을 확보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결과적으로 작업 후 '안정화'하는데 약 1개월 정도 걸리는데, 이 기간 동안 열차는 서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부고속선은 열차가 촘촘히 다닌다. 앞 열차가 서행하기 시작하면, 뒤따르는 열차도 연쇄적으로 지연된다. 경부(수서), 호남, 전라, 경전, 동해선 고속열차가 대부분 자갈궤도로 부설된 광명(평택)-오송 구간을 통과하는데, 고속열차 운행 효율성이 전반적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콘'궤도, 유지보수인력 1/3 불과…운행 정시성·효율성↑ 인력의존 작업↓

호남고속선을 달리는 KTX-청룡. 콘크리트궤도가 부설돼 있다. 2024.5.8 / 박병선 객원기자
자갈궤도를 콘크리트궤도로 개량하면 이러한 문제들을 상당수 해소해 운행 안전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국정과제로 제시한 '고속열차 증속사업'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에서도 경부고속선 1단계 구간만 자갈궤도를 부설하고, 동대구-부산 간 2단계, 호남고속선, 수서고속선은 모두 콘크리트궤도를 시공했다.
권세곤 연구원은 "고속열차의 안전성과 정시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콘크리트궤도로 개량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갈궤도는 1km 당 시공비용이 9억 원 정도인데, 콘크리트궤도는 이보다 1.7배 비싼 16억 원이 든다.
콘크리트궤도는 최초 시공비용이 비싸지만 유지·보수 비용은 자갈궤도 대비 4분의 1(약 26%)에 불과하다. 수명도 자갈궤도가 25년 안팎인데, 콘크리트궤도는 50년 이상이다. 시공비는 더 들지만 전체 유지관리비용까지 더하면, 콘크리트궤도가 더 경제적이다.

코레일 직원들이 시설유지보수 장비 멀티플 타이 템퍼(MTT)를 이용해 야간 선로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MTT는 궤도의 틀어짐을 정정하는 장비로 선로의 도상(자갈)을 다져 선로의 높낮이, 방향 등을 동시에 보수할 수 있다. 자료사진. / 사진=코레일
유진영 국가철도공단 철도혁신연구원 신기술개발처장은 "자갈궤도에서 고속열차가 시속 300km로 달렸을 때, 궤도 파괴는 속도의 제곱에 비래해 진행된다. 유지보수 비용 자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 밖에 없다"며 "콘크리트궤도의 경우, 주기적으로 레일 연마 작업만 시행해도 되기 때문에 유지보수 비용도 적게 들고, 관리도 수월하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자갈궤도 유지보수 작업 과정에서 인력이 투입될 수 밖에 없는데, 콘크리트궤도는 이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자갈궤도를 유지보수하기 위해선 인력과 대형 장비가 함께 투입해야 하고, 주기적으로 인력에 의존해 작업을 해야 한다. 자갈궤도보다 콘크리트궤도가 작업자 안전 확보 측면서 유리한 이유다.
권 연구원은 "경부1단계 구간에서 자갈궤도를 유지보수하는 인원과 비교했을 때, 2단계 구간에서 콘크리트 궤도를 유지보수하는 인원은 3분의 1 수준"이라며 "세계 트렌드를 살펴보면, 최근 건설되는 고속철도는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네시아 등에서도 자갈궤도가 아닌 콘크리트궤도로 개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400km/h 증속, '콘'궤도 필수 "열차 정상운행…맞춤형 기술개발 본격화"

경부고속철도 1단계 구간 천안아산역 인근(서울방향) 선로. 자갈궤도가 부설돼 있다. 이 구간은 열차가 하루 최대 350여 회(왕복) 운행한다. 2029년경 선로유지관리지침 상 교체 기준인 '누적통과톤수 8만톤'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5.8.19 / 철도경제
자갈궤도를 콘크리트궤도로 교체해야할 이유는 분명하다. 문제는 '어떻게 개량하느냐'다.
경부고속선 평택-오송 구간에선 하루에 고속열차가 왕복 350여 회 통과한다. 해외에선 열차 운행을 전면 중단하고 개량사업을 하는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고속열차 운행을 완전히 멈추고 작업을 할 수가 없는게 현실이다.
지난해에만 고속열차에 약 1억 1000만 명이 탔다. 고속열차 운행이 중단되면, 국민 입장에선 중·장거리 이동을 위한 주된 교통수단이 사라지게 된다.
코레일 철도연구원에선 열차 운행을 중단시키지 않고, 야간에 열차가 다니지 않는 4시간을 활용, 순차적으로 자갈궤도를 콘크리트궤도로 개량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시도한 적이 없는 기술이다.
이미 코레일 철도연구원에선 2013년부터 단계적으로 자갈궤도를 콘크리트궤도로 개량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을 추진했다. 2019년에는 국토부 R&D과제를 수행, 과천선(4호선)에 '사전제작형 플로팅슬래브 궤도'를 개발해 성공적으로 부설한 경험을 갖고 있다.
20m 길이의 콘크리트궤도 패널을 공장에서 미리 제작해, 열차가 다니지 않는 야간 시간 동안 도시철도 터널 내 부설하는 공법이다. 이후 기술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해 시속 200km급에 대응할 수 있는 사전제작형 급속개량궤도 기술을 개발, 전라선에 시험 부설했다.

2020년 9월 3일 과천선(4호선) 정부청사역 인근에서 열린 사전제작형 급속개량궤도 2차 시범부설 시연회 모습. 도시철도 터널 내 기존에 깔린 자갈을 걷어내고, 미리 제작한 콘크리트궤도를 특수 장비를 이용, 현장에 이동한 후 시공하고 있다. 자료사진. / 철도경제
이러한 선행 연구개발 성과를 기반으로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고속철도 교량, 터널 토공 구간에 부설된 자갈궤도를 콘크리트궤도로 개량하는 기술을 연구·개발할 계획이다.
핵심은 △사전제작형 고속철도 궤도 개발 △고속선 기존 궤도 철거 및 급속 시공기술 개발 △급속시공을 위한 전용장비 개발 등이다.
개량 대상 구간이 광명-동대구 간 264km인데, 이 구간의 약 90%가 자갈궤도다. 노선이 길고, 작업 시간이 짧은 만큼 맞춤형 기술·공법이 필요하다.
권세곤 연구원은 "우선 주어진 시간 내에 자갈을 걷어내는 기술, 그 다음 열차가 90km 이하로 서행할 수 있는 임시궤도를 설치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음날 임시궤도를 철거하고 본 궤도를 깔 수 있는 전용시공장비를 개발해야 한다. 그런데 현장에서 즉석으로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방식은 굳는데 시간이 오래걸려 적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사전제작형 콘크리트 패널을 현장에 운반하고, 패널과 패널 사이 높낮이를 맞추기 위한 '급속 충진용 모르타르' 기술 개발까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기술들이 모두 맞물려야만 세계적으로 시도해본 적 없는 '운행 고속선 콘크리트궤도 개량' 사업을 할 수 있다.
권세곤 연구원은 "현재까지 기술은 하루 20m 정도가 최대인데, 고속철도에선 하루 50m 이상 작업을 할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라며 "여러 공구로 나눠 동시에 작업을 진행한다면, 더욱 신속하게 개량을 할 것이라 예상한다"고 말했다.
"해외서도 주목할 것…분기기 개량 기술개발도 서둘러야"

2010년 개통 전 경부고속철도 2단계 울산역 인근 분기부 모습. 자료사진 / 사진=국가철도공단(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코레일 철도연구원 주관하는 '고속선 자갈궤도 구간 사전제작형 급속개량 콘크리트궤도 및 시공장비 개발' 연구개발 사업에 '분기기 구간'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분기기(건넘선)가 설치된 구간은 자갈궤도에서 콘크리트궤도로 개량하는게 더 까다롭다. 최대 150m에 이르는 분기기 '틀'을 한번에 들어내고 작업할 수 없고, 선로전환기나 신호시스템 등과도 서로 연동돼 있다. 자칫하단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유진영 처장은 "선로에서 가장 취약한 곳 중 하나가 '분기기'인데, 이 구간도 콘크리트궤도로 개량하기 위한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며 "분기기 구간 콘크리트궤도 개량을 위한 기획 연구개발과제(모듈형 분기기 개량 기술개발)를 추진하기 위해 관계기관과 논의 중이다"고 언급했다.
고속열차가 정상 운행하면서, 열차가 다니지 않는 야간시간대를 활용, 자갈궤도를 콘크리트궤도로 개량하는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면 해외 시장에서도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권세곤 연구원은 "열차가 정상 운행하면서, 시속 400km급으로 고속열차를 증속하기 위한 궤도개량 기술을 확보하는게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점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프랑스철도공사(SNCF)에서도 열차 운행에 지장을 주지 않고 자갈궤도 개량을 할 수 있는 우리 기술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우리가 기술을 확보하면, 노후화된 철도 인프라를 교체해 안전을 확보하면서, 해외 수출로 이어질 수도 있어 철도산업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장병극 기자, 이승윤 기자
[출처 : 철도경제신문(https://www.r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