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비즈 'CBM기술'…인도 고속鐵 수출 뚫었다 [기획]
인도 최초 고속철도 프로젝트, CBM 기술 공급 확정
세계 베어링 1위 SKF 제쳐…기술평가 단독으로 통과
까다로운 인도 철도청서 인정, "수정없이 원안대로"
인도 고속철도 안전기준 제시, 올 5월 첫 제품 납품
운영·유지보수 솔루션, 고부가가치 영역…해외진출 속도

인도 반데바라트 익스프레스. 자료사진. / 사진=Wikimedia Commons
철도 상태 기반 유지보수(CBM, Condition Based Maintenance) 시스템 전문 기업 글로비즈(Globiz)가 세계 최대 철도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인도의 심장부를 뚫었다.
글로비즈는 지난해 7월 인도 최초의 고속철도 프로젝트(NHSRCL 주관)에 적용될 핵심 안전 시스템인 '차축 베어링 온도 및 진동 모니터링 시스템'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수주액은 약 50만 달러. 2편성 16칸으로 글로비즈는 올해 5월부터 제품 공급을 시작한다.
글로비즈는 단순한 부품 공급에 그치지 않고, 고속철도의 안전을 담보하는 핵심 기술 분야에서 글로벌 거대 기업들을 제치며 수주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한국 중소기업이 기술력만으로 인도 고속철도 프로젝트 파트너로 독자 선정된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글로비즈 관계자는 "한국 철도 기술 수출사에 있어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SKF 넘은 기술력, 인도 준고속철 시장서 성능 입증
이번 수주는 우연이 아니다. 이미 인도 철도청(Indian Railways)이 야심 차게 추진 중인 준고속열차 '반데 바라트(Vande Bharat)' 프로젝트에서 기술력을 입증받은 바 있다.
2024년 당시 발주처가 실시한 엄격한 기술 평가(Technical Qualification)에서 글로비즈는 세계 베어링 시장 점유율 1위인 유럽의 SKF와 맞붙었다.
결과는 글로비즈의 판정승이었다. SKF가 기술 평가에서 고배를 마셨고, 글로비즈는 해당 기술 평가를 통과하며 인도 철도 당국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번 고속철도 프로젝트 수주로 이어지는 결정적 열쇠는 이미 검증된 '액슬(Axle) 발열 및 진동 감지 알고리즘'의 신뢰성이었다.
글로비즈 관계자는 "브랜드 인지도가 아닌, 철저한 데이터와 현장 테스트 결과만으로 베어링 세계 1위 기업을 넘어선 사례"라고 설명했다.
"No Modification…글로비즈가 글로벌 표준"

인도 메다 서보 드라이브(Medha Servo Drives)와 글로비즈가 기술 미팅을 하고 있다. / 사진=글로비즈
이번 계약 과정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발주처인 메다 서보 드라이브(Medha Servo Drives)와 엔드유저인 NHSRCL의 이례적인 반응이다.
통상적으로 인도 철도 시장은 고온, 먼지, 선로 상태 등 현지 환경의 특수성으로 인해 해외 기업에 까다로운 사양 변경(Customizing)을 요구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글로비즈와의 기술 미팅 직후, 발주처 측은 "제안된 기술 사양을 별도의 수정 없이 그대로(As-is) 적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글로비즈의 CBM 시스템이 설계 단계부터 고속철도의 극한 주행 환경을 완벽하게 고려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 철도 기술의 완성도가 즉시 현장에 투입 가능한 '글로벌 스탠다드'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코레일과 함께 빚은 기술, 해외로 진출

R&D 당시 글로비즈 CBM 시스템 실증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 사진=글로비즈
이러한 기술적 성취의 이면에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과의 오랜 협력이 자리 잡고 있다. 글로비즈의 CBM 기술은 국내 KTX 및 주요 간선 철도에서 실증을 거쳐 최종 개발됐다.
2015년부터 2020년가지 5년 간 R&D를 진행하면서, KTX 차종을 대상으로 가혹하게 실증 테스트 진행했다.
이를 통해 글로비즈는 고속 주행 시 발생하는 베어링의 미세한 온도 변화와 진동 데이터를 정밀 분석하는 독자 알고리즘을 완성했다.
개발 이후 기술 행보가 더 빨라졌다. 2021년 시속 260km급 고속열차인 KTX-이음(EMU-260)에 CBM 시스템 양산·납품을 시작해 상용화에 성공했다.
2024년에는 시속 320km급 고속열차인 KTX-청룡(EMU-320)에도 CBM 시스템을 납품하며, '고속철도 기술 기업'으로 도약했다.
"고객이 다시 찾는 기술…신뢰한다는 증거"

현대로템이 제작한 320km/h급 동력분산식 고속열차 EMU-320(KTX-청룡). 2023년 당시 강릉선에서 시운전을 하기 위해 서원주역에서 대기하고 있는 모습. 2023.6.8 / 철도경제
기술력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재구매(Repeat Order)로 증명됐다.
지난해 글로비즈는 KTX-이음 차량에 적용하는 CBM 시스템 추가 수주를 확정 지었다.
수 년간 축적한 고속 주행 데이터와 유지보수 현장의 노하우가 집약된 글로비즈의 CBM 시스템은 탈선의 주원인이 되는 차축 베어링의 이상 징후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분석한다.
한국에서의 탄탄한 운용 실적(Track Record)은 보수적인 인도 철도 시장의 진입 장벽을 허무는 '마스터키' 역할을 했다.
글로비즈 관계자는 "R&D부터 320km/h급 양산, 그리고 재수주로 이어진 지난 10년의 과정은 우리 기술이 '완성형'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쌓은 이 단계별 성공 방정식을 글로벌 고속철도 현장에 그대로 이식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고속鐵 안전의 핵심, 액슬 베어링 CBM

KTX-이음에 글로비즈 CBM 시스템을 장착한 모습. 액슬베어링의 온도와 진동을 실시간 모니터링해 이상 징후를 조기 감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 사진=글로비즈
글로비즈 CBM 시스템은 고속철 차량의 핵심 안전 요소 중 하나인 액슬 베어링의 온도와 진동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이상 징후를 조기에 감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속 운행 환경에서는 미세한 온도 상승이나 진동 변화가 중대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이러한 실시간 상태 감시는 탈선 사고 예방의 핵심 기술로 꼽힌다.
기존에는 주기 기반 정비 방식(TBM)이 일정 시간이나 주행 거리 기준으로 점검을 수행했다.
CBM은 실제 상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비 시점을 판단함으로써 불필요한 정비를 줄이고, 동시에 안전성을 강화할 수 있다.
인도 고속철 프로젝트가 초기 단계부터 CBM을 도입한 배경에도 이러한 운영 효율성과 안전성에 대한 고려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인도 철도에 최신 유지보수 기술 수출…국내 최초

인도 뭄바이-아메다바드 간 고속철도(MAHSR) 건설 현장. / 사진=인도 정부 정보국(Press Information Bureau)
이번 수주는 국내 기업이 인도에 최신 철도 유지보수 기술 수출 시장을 본격적으로 개척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차량 제작 중심이었던 기존 철도 수출 구조에서 벗어나, 운영과 유지보수 기술까지 포함한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한국 철도 기술의 위상을 확장한 사례로 평가된다.
글로비즈 관계자는 "고속철의 경쟁력은 단순한 최고 속도가 아니라, 장기간 안정적으로 운행할 수 있는 유지보수 체계에서 결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레일과 함께 개발한 기술이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이번 인도 고속철 프로젝트는 한국 철도 기술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기술로 시작해 '자립' 꿈꾸는 인도, 韓 모델 본보기
인도 고속철도는 잠재력이 커 글로벌 철도업계가 주시하는 시장이다.
인도정부는 현재 건설 중인 뭄바이-아메다바드 노선을 비롯해 델리-바라나시, 뭄바이-나그푸르 등 총 7개의 고속철도 노선 구축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인도가 추진 중인 고속철도 프로젝트(MAHSR, 뭄바이-아메다바드 구간)는 일본의 신칸센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총연장 508km, 최고 시속 320km로 달리는 이 거대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한 도입이 아닌 '자체 생산(Make in India)'이다.
인도 철도부는 기술 이전(ToT)을 통해 향후 고속철 차량과 핵심 부품을 인도 현지에서 직접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강력하게 추진 중이다. 인도가 한국을 주목하는 이유다.
한국은 1990년대 경부고속철도 건설 당시 프랑스의 TGV 기술을 도입했다. 이후 기술 소화 및 국산화 과정을 거쳐 'KTX-산천'을 독자 개발하고 운영 시스템을 자립하는 데 성공했다.
'선진 기술 도입→운영 노하우 축적→기술 자립'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완벽하게 이뤄낸 나라가 한국이다.
인도로서는 완성된 기술만 파는 일본이나 유럽보다, 기술 도입 후 자립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행착오와 유지보수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한국 기업이 최적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글로비즈의 이번 수주도 인도의 '고속철도 기술 자립' 목표와 맞닿아 있다.
한국이 프랑스 기술을 한국 환경에 맞게 최적화하며 발전시킨 CBM 기술이, 이제 막 고속철 시대를 열며 자체 기술력을 확보하려는 인도에게 가장 현실적인 솔루션으로 다가간 셈이다.
글로비즈, 인도 고속철도 시장에 새로운 안전기준 제시

메다 서보 드라이브(Medha Servo Drives) 및 NHSRCL 관계자들과 글로비즈가 미팅을 하고 있는 모습. / 사진=글로비즈
지난해 7월, 계약 체결 직후 글로비즈 기술팀은 인도로 급파돼 메다 서보 드라이브 및 NHSRCL 관계자들과 킥오프(Kick-off) 미팅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현재는 프로젝트 초기 정합성 확보를 위한 세부 조율을 진행 중이며, 오는 2026년 5월 첫 제품 납품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글로비즈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선점한 레퍼런스는 향후 발주될 수조 원 규모의 인도 철도 유지보수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우위를 점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전망이다.
글로비즈는 이번 수주를 계기로 인도 내 다른 철도 노선 및 글로벌 고속철 시장으로의 확장을 가속화할 계획이다.
임종순 글로비즈 대표는 "인도 고속철도 프로젝트는 상징성이 매우 큰 사업으로, 이곳에 우리의 안전 진단 시스템이 탑재된다는 것은 한국 철도 기술의 쾌거"라며 “차량 제작 위주의 수출을 넘어, 고부가가치 영역인 '운영 및 유지보수 솔루션'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저력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장병극 기자
[출처 : 철도경제신문(https://www.r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