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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목의 변천사
1. 해방 후 침목
해방 전후로 철도에는 목침목이 사용되었다. 전쟁 복구라는 명목으로 연평균 80 만개에 가까운 목침목을 무상원조를 받아 사용함으로써 선로 보수에 큰 애로를 느끼지는 않았으나 원조 침목이 점차 감소함에 따라 침목의 국내 조달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 산림자원이 빈곤한 우리나라는 목침목을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며, 소요되는 외화도 막대하였다. 그래서 철도청에서는 1934 년 4 월 안양에 원심력을 이용한 철근콘크리트 공장을 설립하여 6 ㆍ 25 직전까지 매년 소량을 제작 부설하여 콘크리트 침목의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여 왔다.
2. 6.25이후 침목
6 ㆍ 25 이후 독일의 프리스트레스 콘크리트(Prestressed Concrete)기술의 도입과 함께
한미재단에서 1957 년 안양의 콘크리트 침목공장을 인수하여 PC 빔을 제작함으로써 우리나라에 프리스트레스 콘크리트가 싹트기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처음 제작한 BB-19-55 형을 시작으로 하여 1962 년에 본격적으로 생산을 시작하였다. 제작은 프리텐션 방식에 의하여 침목의 형태를 만드는 철판제 몰드, 즉 형틀에 7mm PC 강선 8 줄을 배열하고 유압잭으로 25ton 의 인장력으로 PC 강선을 인장한 상태로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온도 50~60°의 증기 양생실에서 8 시간 이상 양생하여 콘크리트 강도가 350kg/cm2 가 되면 PC 강선의 인장을 풀어 콘크리트에 압축력을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28 일간 대기중에 살수 양생하여 콘크리트 강도를 500kg/cm2 로 상승시켜 침목을 제작하였다.
3. 현재의 침목 및 체결 장치
1999 년 1 월 기준으로 국철의 1,078 만 개의 침목중 369 만개(34%)가 PC 침목이고 나머지 709 만개는 목침목이다. 이음매 침목도 1978 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PC침목의 레일 체결장치로는 1970년에 한성식과 동아식의 장점올 살린 합성식이 사용되었고, 더욱이 1984년부터 코일 스프링식(팬드롤형)으로 개량되었다.
목침목에도 1960년대 후반에 타이 플레이트를 활용한 2중 탄성 체결구를 급곡선부에 사용하여 오다가, 코일 스프링용 베이스 플레이트를 채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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