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기획] 고장 한 번 나면 수리 '하세월'…서울 지하철 승강기, 왜 멈춰 있나
E/S 제작사 29개사·모델 120종…규격 제각각
예비부품 3~5%만 확보…중국산 부품이 발목
입찰제·표준화 난제 그대로, 서울은 '재고'로 버텨
노후 E/S 631대…자체 재원 요청은 37%만 승인
1대당 1억 원대 부품…가격·수급, 국산품 대체해야
서울 지하철 1~8호선에는 에스컬레이터 1878대가 시민의 발이 되어 매일 오르내린다. 그 가운데 3대 중 1대는 이미 수명을 넘겼고, 어떤 엘리베이터는 부품을 구하지 못해 26일을 멈춰 서 있었다.
[철도경제신문]은 서울교통공사의 행정사무감사 답변자료와 내부 문건 등을 입수해 노후 승강기가 안고 있는 안전과 구조의 문제를 4회에 걸쳐 집중 조명하고자 한다. / 편집자 주

5호선 답십리역 에스컬레이터에 '고장조치중'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모습. 2026.6.10 / 철도경제
서울 지하철에서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가 멈추면, 고치는 데 며칠이 아니라 몇 주가 걸리기도 한다. 어떤 엘리베이터는 부품을 기다리느라 26일을 멈춰 서 있었다.
기계가 유난히 낡아서만은 아니다. 부품을 제때 공급하지 못하는 조달 구조 탓이다.
<철도경제신문>이 입수한 서울교통공사 자료와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공사가 운용하는 에스컬레이터는 제작사 29개사, 모델 120종에 이른다.
같은 노선 안에서도 제작사와 모델이 제각각이고, 핸드레일이나 스텝체인 같은 핵심 부품은 운행 길이에 따라 치수가 달라 고장이 나면 그때그때 주문제작을 거쳐야 한다.
일부는 단종됐고, 일부는 중국에서 들여온다. 부품 하나를 갈아 끼우는 데 바다를 건너야 하는 구조다.
"표준화는 사실상 어렵다"…29개사 120종의 함정
이 문제는 지난해 11월 서울특별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정면으로 다뤄졌다.
당시 경기문 시의원이 부품 규격의 표준화 여부를 묻자, 김기병 기술본부장은 "에스컬레이터 종류가 너무나 많아 표준화하기가 사실상 어렵다"며 "길이가 역별로 다 다르지 않으냐"고 답했다.
공사는 설비 도입 때 예비 부품을 3~5%만 확보해 두고, 고장이 나면 단가 계약으로 그때그때 수급한다. 김 본부장은 "국내 부품은 즉시 수급되지만 중국산 부품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말했다.
예비 부품 3~5%와 단가 계약만으로는 이를 따라잡기 어렵다.
실제로 20일 넘게 멈춰 선 사례가 잇따랐다. 9호선 송파나루역 엘리베이터는 26일, 3호선 남부터미널역과 7호선 중계역 엘리베이터는 각각 23.9일과 23.5일을 멈춰 있었다.
공사가 자료에 적은 사유는 셋 다 같았다. '자재 수급 지연.' 남부터미널·중계역 자료에는 '다중 부품 동시 결함 발견으로 자재 수급에 시간 소요'라는 설명이 붙었다.
값이 싸다는 이유로 들여온 부품이, 정작 고장이 났을 때는 가장 오래 기다려야 하는 부품이 된 셈이다.
부산은 국산화, 공항철도는 직영…서울만 '재고'로 버틴다

6호선 광흥창역에 '부품 수급 장기화로 인한 수리 지연' 안내문이 부착돼 있는 모습. 2026.7.8 / 철도경제
부품 공급을 해외에 의존하는 한 수급 지연은 반복된다. 하지만 타 교통공사들은 이미 해결책을 찾아 나섰다.
부산교통공사는 올해 4월 정밀기기 제조업체 나우테크와 손잡고, 그동안 전량 해외 제품에 의존해온 고심도 에스컬레이터 구동장치를 국산화하기로 했다.
1대당 1억 원이 넘던 부품 비용을 약 5200만 원으로, 2개월 이상 걸리던 조달 기간을 20일로 줄인다는 구상이다.
아직 협약 단계이고 수치도 공사가 제시한 '전망'이지만, 공급망 자체를 바꿔보려 한다는 점에서 방향은 분명하다.
공항철도는 운영 방식에서 답을 찾았다. 부품을 최저가 입찰로 들여오고 규격 표준화가 어렵다는 사정은 서울교통공사와 다르지 않다. 차이는 '사람'이다. 유지보수를 외주가 아닌 직영으로 운영한다.
공항철도 시설처 관계자는 "결정적 차이는 직영이라는 점이다. 직원들이 노하우와 매뉴얼, 기술력을 갖추고 있어 고장이 나면 그날 바로 손을 댄다"며 "외주(아웃소싱) 인력은 아무래도 관리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의 부품 공급망은 29개사 120종으로 흩어진 그대로이고, 유지보수는 외부 용역업체에 맡기는 위탁 구조다.
지난해 11월 시의회에서 확인된 계약 규모는 3년 단위로 600억 원대에 이른다. 그 사이를 예비 부품 3~5%와 단가 계약으로 '그때그때' 메운다.
입찰 제도와 표준화라는 같은 난제 앞에서, 부산은 공급망을 바꾸고 공항철도는 사람을 직접 두는 동안 서울교통공사는 재고로 버티고 있다.
요청 예산 37%…"예방보다 수리 중심" 서울교통공사도 인정

7호선 하계역 에스컬레이터에 '고장조치중' 안내문이 게시돼 있는 모습. 2026.6.8 / 철도경제
공급망이 흩어져 있다면, 한꺼번에 갈아 끼울 돈이라도 넉넉해야 한다. 그러나 배정된 예산은 요청액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공사 내부 문건 '에스컬레이터 중대시민재해 예방 대책(안)'은 "현재 예산체계는 예방보다는 수리 중심 운용으로 장기적인 안전관리에 한계"가 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최근 5년간('21년~'25년) 주요사업 요청 예산의 37% 배정"이라고 남겼다. 필요하다고 올린 예산의 3분의 1 남짓만 받았다는 뜻이다.
'예방보다 수리 중심'이라는 진단도 공사가 작성한 문서에 명시돼 있다.
2025년 국비 0원…노후 승강기, 전력 설비에 밀렸다

9호선 당산역 에스컬레이터 인근에 부품이 놓여 있는 모습. 2026.6.19 / 철도경제
자체 재원이 모자랄 때 기댈 마지막 통로가 국비다.
공사는 2020년 중앙투자심사에서 노후 승강설비 교체 명목으로 482억 원을 신청해 120억 원을 배정받았다. 2023년에는 중간구동형 에스컬레이터 전면교체 사업 369억 원이 심사를 통과했다.
하지만 두 사업 모두 재원은 시비와 자체 재원으로 채워졌다. 국비가 실제로 반영된 건 2024년 안전부품 설치 국고보조 사업(총사업비 82억 원) 한 번뿐이다.
그마저도 지난해에는 끊겼다. 2025년에는 관련 국비 지원 사업 자체가 잡히지 않았다.
이유를 묻는 질문에 김 본부장은 "국비 지원 금액이 많이 떨어지다 보니까 아무래도 열차 운행에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전력 설비 쪽에 투자가 돼서 승강기 쪽이 밀린 것 같다"고 답했다.
줄어든 국비는 열차 운행과 직결된 전력 설비로 먼저 갔고, 시민이 매일 발을 딛는 에스컬레이터는 그만큼 뒤로 밀렸다는 설명이다.
차선책만 만지작…노후 631대는 그대로 방치

7호선 신풍역 6번출구 에스컬레이터 설치공사 현장. 2026.5.13 / 철도경제
국비가 끊기고 자체 재원마저 빠듯한 상황에서 공사가 꺼낸 카드가 ESTR 공법이다.
기존 트러스는 보강해 재사용하고 모터·체인·스텝 등 주요 구성품만 전면 교체하는 방식으로, 공사는 비용을 약 28% 줄이고 공사 기간을 60% 단축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유관기관 최초 도입'이라는 설명도 붙였다.
그러나 ESTR은 국비를 받기 어려운 조건에서 자체 재원만으로 노후 기기를 버텨내려는 차선책의 성격이 짙다.
그 자체 재원이 어디로 흘렀는지를 보면 우선순위는 더 또렷해진다.
2025년 에스컬레이터 개량 실적은 전면교체 2대(5억 6000만 원)를 비롯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반면 같은 해 새로 들어선 승강편의시설 10대에는 661억 원이 투입됐다.
신규 설치에 661억 원이 투입되는 사이, 노후 승강기 개량 예산은 67억 원에 머물렀다.
부품은 29개사 120종으로 흩어져 있고, 핵심 부품 일부는 바다 건너에서 온다.
노후에스컬레이터 631대를 방치한 채 2025년 국비는 0원이었고, 자체 재원 요청은 37%만 받아들여졌다. 그사이 26일을 멈춰 선 엘리베이터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 600억 원대 유지보수 계약은 어디로, 누구에게 가고 있을까. 다음 편에서는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 유지보수 계약이 어떻게 특정 업체에 장기간 집중돼 왔는지, 그리고 시의회에서 정면으로 제기된 '카르텔' 의혹의 실체를 추적한다.
/ 곽나영 기자
[출처 : 철도경제신문(https://www.r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