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해 바다가 보이는 철길, 여수 만성역
기차여행자에게 여수는 정말 놀기 좋은 곳이다. 여수역에 내려 도보로 대표 관광지인 오동도를 보러 갈 수도 있고, 가까운 거리에 바다가 있어 바다 구경하기에도 좋다. 돌산갓김치로 유명한 돌산도와 향일암을 가도 좋고, 금오도, 사도와 같은 섬 구경을 겸하기에도 무리 없다. 2012년에는 세계박람회(여수엑스포)가 개최될 예정이어서 현재 여수앞바다 일대는 여수역사 이전을 포함한 공사가 한창이다.
여수역에 내려 택시 기본요금 또는 도보로 15분이면 오동도 입구까지 갈 수 있다. 여수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오동도는 섬 전체가 볼거리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봄이면 섬 곳곳에 동백꽃이 군락을 이루어 섬을 붉게 물들이고 맨발지압산책로, 식물원, 전망대, 잔디밭, 용굴 등 자연과 어우러진 볼거리가 많아 계절마다 느낌이 다르다. 오동도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을 타고 돌산도를 한 바퀴 돌거나 주변의 섬들을 구경하고 오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하지만 오동도의 가장 큰 매력은 섬 곳곳에 숨어있는 조용하고 깨끗한 해변이 많다는 점이다. 추운 겨울이지만 따뜻한 남쪽나라의 따사로운 햇살 아래서 아무 생각 없이 바다를 감상하기도 하고 유람선도 타면서 친구, 연인과 달콤한 이야기를 나누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위치한 향일암은 금오산 기암절벽 사이의 울창한 동백나무와 남해의 수평선에서 솟아오른 일출 광경이 천하일품이어서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이다. 대웅전을 비롯한 부속 건물은 1986년에 지어져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적지만, 일출을 맞이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주말 아침이면 관음전 주변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관음전 옆에 ‘소원의 벽’이라는 큰 바위가 있는데, 여기 동전을 붙이고 소원을 빌면 성취된다는 말이 전해져 오고 있으니 뭔가 풀어야 할 소원이 있다면 소원의 벽에 도전해 보자. 단, 접착제나 밥풀을 이용하는 것은 천기누설로 반칙이다.
여수관광 하면 대부분 오동도-돌산공원(돌산대교)-무슬목(해양박물관)-향일암을 꼭 코스로 추천하는데, 사실 여수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려면 꼭 위의 4가지를 코스로 둘러볼 필요는 없다. 여행 다니다 보면 꼭 어디어디 둘러봐야 제대로 놀고 온 것 같지만, 나중에는 위의 코스를 다니다 만나게 되는 푸른 바다만 생각나기 때문에, 되도록 여수 주위의 바다를 충분히 감상하고 돌아오는 것이 남는 장사일 것이다.
해변과 철길의 기막힌 조화
만성역은 열차의 종착역인 여수역 직전에 있는 작은 간이역이다. 기차는 대부분의 경우 서지 않으며, 피서철 임시열차가 가끔 정차할 정도로 역 본래의 기능은 상실한 지 오래인 곳이다. 그래도 간이역 치고 시설물 규모는 상당하다. 50명은 거뜬히 앉아도 될 만큼의 단체손님용 벤치가 만들어져 있고, 한꺼번에 1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천연 푸세식 화장실까지 갖춰져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 결정적으로 평소에는 기차가 멈추지 않는 간이역이라는 점이다.
이것만으로는 만성역에 가야 할 이유가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만성역이 철도마니아들의 사랑을 받는 결정적인 이유는 만성리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풍경 때문이다. 아주 잠깐이지만 기차를 타고 가면서도 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데, 광역전철처럼 만성역에 기차가 자주 멈춰 선다면 많은 관광객들이 이용할 수 있을 만한 위치다. 일부러 찾아가도 아깝지 않을 만큼의 아름다움이 있다. 특히 만성역에서 마래2터널 방향으로 1km 남짓한 철길 옆 도로를 따라 걸어가면 해안절벽 위에서 보이는 바다와 철길의 풍경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하지만 지난 역사를 보면 이곳은 그저 멋진 풍경만 보고 찾아올 만한 곳만은 아니다. 1948년 여수?순천사건 때 반란에 가담한 혐의로 100여 명이 학살된 장소가 마래2터널 진입 전 공터에 있고, 등록문화재 제 116호인 마래2터널은 일제 때 강제 동원된 많은 조선인들이 다치거나 죽음을 당하면서 완성된 곳이기 때문이다.
여수에서 출발한 열차는 마래철도터널을 통과, 만성리학살지를 지나면서 갑자기 푸른 바다를 만나고, 피서지가 내려다보이는 만성역을 지나면서 순천, 전주, 서울 등의 도시를 향해 힘차게 달리게 된다. 마치 어두운 역사의 그늘 속에서 점점 벗어나 밝고 새로운 역사를 향해 달리듯 전라선 철길을 따라 떠나는 간이역 여행의 시작과 끝이 여수에 있다.
현재의 여수-만성리 철길은 한창 공사 중인 여수 신역사가 문을 여는 12월 23일이 지나면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고, 현재 위치에서 산 쪽으로 한참 들어간 터널 구간으로 바뀔 예정이다. 기차를 타고 이렇게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마니아를 위한 간이역, 경전선 평화역
평화(平和)역이라니... 정겹고 한가로운 간이역의 이미지에 참 걸맞은 이름이다. 정말 그곳에 가면 평화가 있을까?
지금은 순천시 해룡면 신대리에 위치하고 있지만, 처음 간이역이 만들어지던 1968년 당시의 주소는 전남 승주군 해룡면 평화리였으므로 자연스럽게 ‘평화’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주소가 신대리로 바뀌어도 역명은 바뀌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미 그 이름 속에서 평화의 실마리를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2002년 공식 폐역되었고 지금은 플랫폼을 구성하던 콘크리트 덩어리와 가로등만 고대 유적처럼 남아있을 뿐이지만, 이곳의 존재를 아는 철도마니아와 평화를 기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꾸준히 방문하고 있는, 조금은 독특한 곳이다. 흥미로운 것은 폐역된 지 7년이 지나도록 역 진입로에 있는 간이버스정류장에는 아직도 ‘평화역’이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정말 그곳에 가면 평화가 있을까? 답은 평화역을 찾아가는 독자님들의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글·사진 임병국